지멘스 시그니아 역사 제 2편-
더 가볍고 작아진 Phonophor

첫 번째 Phonophor 모델의 큰 성공 이후 Siemens & Halske는 베를린의 Wernerwerk 공장에서 생산을 확대했습니다. 새로운 목표는 다양한 난청 수준에 따라 나타나는 적응기간을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크 및 스피커 기술의 발전으로 phonophor는 더 가볍고 작아졌으며 사용자의 편리성과 성능, 음질 등을 향상시켰습니다. 그로 인해Phonophor에 대한 수요는 독일 및 전 세계에서 증가했으며, 1920 년대 중반에는 미국에서만 매년 수천 대가 판매되었습니다.

1926년, 지멘스는 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더 이상 난청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 마세요! 많은 난청인으로부터 수 년간 인정받은 Phonophor 보청기를 사용해보세요. 수많은 테스트와 연구를 거쳐 크게 개선된 이어폰 또한 사용해보세요!”라고 말이죠.

실제로 지멘스의 엔지니어들은 여러 가지 개선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Phonophor 모델 이후 처음 출시된 이어폰은 우수한 착용감과 지멘스 보청기의 주요 판매 포인트 측면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다른 많은 신기술처럼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가장 문제가 많이 나타난 곳은 진동판이었습니다. 진동판의 온도가 올라가 따뜻해지면서 판이 팽창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앵커를 고정하고있는 접착 본드를 약화시켜 결국은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는 이러한 초기 문제를 파악하여 Phonophor의 기술 및 구조 설계 작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난관을 통해 그들은 더욱 큰 발전을 이루었고, 더 많은 제품을 추가로 출시하고 보청기를 개인의 난청 수준에 맞게 조절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1924년에 마이크 증폭기가 선택 사양으로 출시되며 고도 난청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지멘스의 기술자들은 귀 뒤에 착용하는 골전도 헤드폰을 발명하였습니다. 음파는 단순히 공기로 전달되는 것뿐만 아니라 단단한 물체도 통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헤드폰은 전도성 난청 및 중이의 청력 손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유용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전도성 난청과 중이의 손상으로 인해 음파가 공기를 통해 내이에 전달되지 못해 소리를 듣지 못하였던 사람들은 골전도 헤드폰을 통해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28 년부터 일부 모델에는 신소재가 사용되어 착용자의 편의를 향상시키며 지속적인 기술의 발전을 이뤘습니다. 마이크 케이스는 더 이상 금속 재질이 아닌 새로운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로 제작되어 Phonophor의 무게를 눈에 띄게 줄이기도 하였습니다.

보청기는 램프나 선풍기와 같이 시중에서 쉽게 판매되는 품목이 아니었습니다. 1920 년대 말까지도 난청인들은 여전히 보청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각 전문가의 광고 및 파트너십 외에도 영업 사원에 대한 교육이 중요했습니다. 당시 보청기 영업사원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보청기 제품을 선택하고, 사용법을 알려주고 익숙해지는 것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1928년, 지멘스에서 발행한 Phonophor 판매 가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영업 직원은 개인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관계를 우호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이를 토대로 phonophor 의 우수성을 고객에게 확인시켜야 한다” 라고 말이죠.